2026년 10월 12일
무엇이 기쁜가
묵상
무엇이 기쁜가.
물으면 대답은 쉽게 나온다. 일이 풀릴 때. 기다리던 소식이 올 때. 막혀 있던 것이 뚫릴 때. 기쁨은 대개 무언가가 잘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온다.
그런데 이 대답을 뒤집어 보면 조금 무섭다. 잘 되는 일이 없으면 기쁠 수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흩어진 사람들
스데반이 죽던 날,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다. 사도들 말고는 다 흩어졌다고 성경은 적는다.
떠난 것이 아니라 흩어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밀려난 길이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사도행전 8:4)
성경은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밀려난 그들이 그 가운데서 무엇을 했는지는 적는다. 두루 다니며 말씀을 전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내려갔다. 그리스도를 전했다. 사람들이 듣고, 표적을 보았다. 귀신이 나가고 못 걷던 사람이 나았다. 그리고 한 줄이 붙는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 8:8)
놀라움과 기쁨
이 한 줄 앞에서 궁금해진다. 흩어진 사람들의 형편은 어떠했을까.
이 대목에는 그런 말이 없다. 박해가 그쳤다는 말도, 그들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도 없다. 흩어진 사람들은 여전히 흩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본문은 기쁨이 어디서 왔는지 순서를 매겨 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빌립의 말도 듣고 표적도 보았다고 나란히 적을 뿐이다. 다만 빌립이 전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다. 그리스도였다.
바로 뒤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마술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오랫동안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그를 따랐다. 그런데 그의 대목에는 기쁨이라는 말이 없다.
놀라는 것과 기뻐하는 것은 다르다.
누구의 기쁨인가
여기서 한 번 더 걸린다.
흩어진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기뻐했을까. 자기 일이 풀리는 것을 본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듣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그 기쁨은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일어났고, 그들은 그 기쁨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형편이 그대로인 것과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께 속해 있는가라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고르는가
그래서 질문이 바뀐다. 무엇이 기쁜가에서, 누구의 기쁨을 고르는가로.
나는 대개 내 형편 쪽에 기쁨을 걸어 둔다. 그러면 기쁨은 늘 다음으로 미뤄진다. 이 일만 풀리면. 이것만 지나가면.
흩어진 사람들은 그렇게 기다리지 않았던 것 같다. 형편이 바뀌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큰 기쁨을 보았다.
나는 아직 그쪽을 자신 있게 고르지 못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내 기쁨으로 삼는다는 말은 알겠다. 내 형편이 아픈 날에도 그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던 날, 그들은 여전히 흩어진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