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일
광야 교회
묵상
하나님은 교회 안에 계신다고 생각하기 쉽다.
예배당에서, 기도할 때, 일이 잘 풀릴 때. 그럴 때는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그 밖이다. 계획이 틀어지고, 사람에게 거절당하고, 다음 걸음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망친 땅
스데반은 돌에 맞기 직전에 긴 설교를 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짚는다. 그 한가운데 모세가 있다.
모세는 동족을 도우려다 거절당했다.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도망쳤다.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사도행전 7:29)
도주했고, 나그네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살았다.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그 땅에 뿌리를 내렸다는 뜻일 것이다. 돌아갈 생각을 접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내 짐작이다. 성경이 그의 속을 적어 두지는 않았다.
그렇게 사십 년이 지났다.
신을 벗으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사도행전 7:30)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은 성전이 아니었다. 제단도 제사장도 없는 광야였다. 가시나무 떨기 하나에 불이 붙은 자리였다.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사도행전 7:33)
거룩한 땅이라고 하신다. 모세가 도망쳐 온 땅이다. 실패한 사람이 양을 치던 땅이다. 그 땅을 거룩하다고 하신다.
땅이 바뀐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셨다. 그것이 전부다.
스데반이 이 이야기를 누구 앞에서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조금 놀랍다. 그는 성전을 거슬러 말했다는 이유로 끌려와 있었다. 성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성전 밖 광야에서 말씀하셨다고 증언한 것이다.
내가 확실히 보고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7:34)
성경은 그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다고 적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십 년 동안 보고 계셨고 듣고 계셨다. 조용한 것과 안 계신 것은 다르다.
그리고 내려왔다고 하신다.
흉년을 두고 쓴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은 함께 내려가겠다고 하신다. 안 내려가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으신다.
야곱에게는 함께 내려가겠다고 하셨고, 모세에게는 내려왔다고 하신다. 우리가 올라가서 만나는 분이 아니라 내려오시는 분이다.
광야 교회
스데반은 조금 뒤에 이런 말을 한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사도행전 7:38)
광야 교회. 성경이 광야를 교회라고 부른다. 건물도 없고 성전도 아직 없던 때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있었고, 거기 살아 있는 말씀이 있었다. 그것을 교회라고 불렀다.
그런데 바로 그 광야 교회에서 사람들은 송아지를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사도행전 7:39)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그들은 말했다. 보이지 않는 지도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대신 보이는 것을 원했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사도행전 7:41)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했다고 성경은 적는다.
나는 이 대목이 남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 나도 무언가를 만든다. 계획을 세우고, 붙잡을 것을 찾고, 그것이 나를 지켜 주리라 믿는다. 송아지처럼 생기지 않았을 뿐이다.
교회 밖에서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지 않는다. 이 말은 교회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 밖으로 밀려난 자리에도 그분이 계신다는 말이다.
도망친 땅에서, 사십 년 동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던 곳에서, 하나님은 보고 듣고 계셨다. 그리고 그 땅을 거룩하다고 하셨다.
거꾸로도 읽힌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있던 광야 교회 한복판에서 송아지가 만들어졌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선 그 자리에서 신을 벗었느냐다.
나는 아직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알겠는데, 내가 신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지는 못한다.
다만 모세도 사십 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