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5일

쓴물

묵상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은 쓴맛을 낸다. 이 쓴맛 때문에 그 사람의 존재가 쓰다.

그러나 그 쓴맛 때문에 더 달콤해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에스프레소도 좋아한다. 쓰기 때문이다. 쓴 것을 먹고 단 것을 먹으면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사흘을 걸었다. 물을 만나지 못했다. 겨우 만난 물이 마라였다. 마라는 '쓰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다. 모세가 부르짖자 여호와께서 나무 하나를 가리키셨고, 그것을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출애굽기 15:25)

물은 그대로 마라의 물이었다. 나무 하나가 던져지자 쓴물이 단물이 되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 쓴맛을 봤다고 해서 더 써지는 것이 아니다.

쓴맛을 봤기 때문에 더 달콤해지도록 하는 사람이 있다. 쓴맛을 봤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달콤해지는 사람이 있다.

쓴맛은 내가 쓴맛 나는 존재로 사는 것의 핑계가 되지 못한다. 꿀맛 같은 존재가 되자.

야고보는 시험을 당하면 기뻐하라고 했다. 시험 자체가 기쁜 것이 아니다. 그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 1:2-3)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이 있다. 쓴 약이 좋은 약이라는 말이 아니다. 고통과 어려움은 유익을 동반한다는 말이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브리서 12:11)

당시에는 즐겁지 않다. 성경은 그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뒤에 열매가 있다고 한다.

동반하고 있는 유익만 걸러 내면 쓴맛 같은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둘 다 받아들일 때 진정한 은혜가 있다.

나무 하나가 던져지지 않으면 마라의 물은 그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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