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0일
고난, 아는 것과 견디는 것 사이
묵상
고난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섭리가 있다.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말해 왔다.
그런데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아는 것이 아픔을 덜어 주지는 않았다. 뜻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믿음이 미천한가. 어제 이렇게 적었다.
지연이 거절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아는 것과 견디는 것은 다르다.
어제는 기다림을 두고 쓴 문장이었다. 오늘은 고난 앞에서 같은 문장을 다시 쓴다. 아는 자리와 견디는 자리 사이에 내가 서 있다. 그 사이가 생각보다 멀다.
아프다고 말한 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이 잔에 뜻이 있다는 것을 그분보다 잘 아는 이는 없다. 그 잔을 위해 오셨다. 그런데도 옮겨 달라고 하셨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다고 성경은 적는다(누가복음 22:44).
뜻을 아는 것과 잔이 쓴 것은 별개다. 예수님은 그 둘을 한 자리에서 겪으셨다.
그러니 아픈 것을 아프다고 하는 것이 믿음 없음의 증거는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는다. 견딜 만해지는 것이 믿음의 표시라면, 그 밤의 예수님은 어디에 서 계신 것인가.
믿나이다, 그리고 믿음 없나이다
자괴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내려간다.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면, 나는 정말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것이 맞는가. 인도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길이 이렇게 어두울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소리 내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마가복음 9:24)
한 문장 안에 믿음과 믿음 없음이 같이 들어 있다. 아들을 고쳐 달라고 온 아버지의 말이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아이를 고쳐 주셨다. 믿음이 정리된 다음에 고쳐 주신 것이 아니다.
시편 88편은 위로의 말 없이 끝난다. 마지막 줄이 이렇다.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시편 88:18)
보통은 여기서 한 줄 더 올라간다. 그래도 주는 선하시다고, 그래도 내가 찬송하겠다고. 88편에는 그 한 줄이 없다. 흑암에서 끝난다.
이런 기도를 성경 안에 그대로 두셨다는 것이 나에게는 위로다. 정리되지 않은 기도를 지우지 않으셨다.
계획하는 손
그래서 나는 계획을 세운다. 기다리면서도 준비한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되면 저렇게 하겠다고 적어 둔다. 그리고 실행한다.
그런데 그 적어 둔 것을 다시 보다가 문득 마음이 걸린다. 실행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형언 할 수 없는 찔림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못 믿어서 하는 일 아닌가. 응답을 기다린다면서 뒷문을 하나 만들어 두는 것 아닌가.
의심해서 죄책감이 들고, 그 의심을 대비하느라 또 죄책감이 든다. 죄책감이 두 겹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오래 이 구절을 계획하지 말라는 말로 읽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계획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신다. 계획은 사람의 몫으로 그냥 두신다. 다만 걸음은 그분이 인도하신다고 하신다. 계획과 인도가 한 문장 안에 같이 있고, 둘이 다투지 않는다.
이틀 전에 이렇게 적었다.
바뀌어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손이다.
계획도 그런 것 같다. 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쥐는 손이 문제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 적어 둔 것을 펴 놓고 이것이 준비인지 불신인지 나 자신도 모른다. 구별이 안 되니 죄책감도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은 닫지 않는다
정리하고 싶은데 정리가 안 된다.
나는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의심하고, 여전히 계획을 세우고, 여전히 그 계획 앞에서 미안하다. 이 네 가지가 한 사람 안에 같이 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올라온다.
다만 오늘 하나만 붙잡는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두 문장이었다. 이 잔을 옮겨 달라는 문장과,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라는 문장.
순서가 그러했다. 아프다는 말이 먼저였고 순종이 뒤였다. 나는 앞 문장에 오래 머문다. 뒤 문장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걸리는 것이 믿음 없음인지, 아니면 그 시간이 믿음인지 나는 모른다. 아직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