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8일
조급함
묵상
나는 빠른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빠른 사람이다. 다소 나쁘게 표현하면 급한 사람이다.
예수를 만나고 석 달 만에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부인했지만 또 빠르게 순종했다. 이것저것 계산하는 성향으로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속도가 나를 괴롭게 할 때가 있다.
하루 일과를 시간 단위로 적어 둔다. 적어 두고 지키지 못하면 나를 몰아세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이 나를 쉬게 두지 않는다. 이런 것을 두고 나는 오래도록 성실이라고 불렀다.
같은 속도, 다른 이름
석 달 만의 순종과 시간 강박은 속도가 같다. 그런데 하나는 은혜였고 하나는 고통이다.
차이는 속도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방향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
순종은 결과를 모르는 채로 움직이는 것이다. 조급함은 결과를 내가 쥐려고 움직이는 것이다. 겉으로는 둘 다 부지런해 보인다. 그래서 잘 구별되지 않는다. 나도 자주 속는다.
위장
전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인 것처럼 위장하는 나의 나라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조급함은 그 위장이 즐겨 쓰는 옷이다.
빨리 세워야 한다고, 지금 해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문장의 주어를 들여다봐야 한다. 대개 주어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다. 하나님의 일이 늦어질까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내가 늦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게으르라는 말인가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손이다. 하나님의 손에 올려져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내가 조급하다고 해서 앞당길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에 훨씬 더 많다.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이 글을 쓰는 홈페이지도 그렇다.
첫 글에 이렇게 적었다. 이 건물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고.
알 수 없다는 것이 불안이 아니라 안심이 되는 날, 나는 조급함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